Daydera Magazine

8월의 인물 — 베어트리파크 설립자 이재연
출처 | 베어트리파크 사람은 저마다 무엇인가에 자신의 시간을 맡기며 살아간다. 일에, 가족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중 나무에 시간을 쏟은 베어트리파크 이재연 회장을 만나보려한다. 은행을 거쳐 LG그룹 부회장까지 오른 대기업 최고경영자 이재연 회장. 남들이 주말이면 골프장으로 향할 때, 그는 세종으로 내려갔다.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작은 온실에서 양란을 가꾸던 소박한 취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삶의 중심을 깊숙이 채워갔다. 주말마다 어김없이 흙 속에 손을 넣고 나무를 돌보던 그 수많은 날들. 그 오랜 세월과 정성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의 (세종)베어트리파크가 되었다. 나무에 쏟은 시간은 숲이 되어 돌아온다. 출처 | 연합뉴스(베어트리파크제공) 1. 1966년, 첫번째 나무이재연 설립자가 나무와 함께한 시간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왕 2만 평 규모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소나무 등을 심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갔다. 좋은 나무를 발견하면 직접 가져와 심고, 귀한 나무는 씨앗을 얻어 다시 키웠다. 처음 그가 만든 농장의 이름에 대한 일화는 꽤 인상적이다. 수목원에 심어둔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파도처럼 느껴졌던 그는 그 풍경이 그토록 인상 깊어 첫 번째 나무를 심은 의왕 정원을 '소나무 물결'이라는 뜻의 '송파원(松波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의를 기울여 관찰을 해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나무를 향한 그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그에게 나무는 단순히 정원을 채우는 장식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바라봐주고, 그 나무가 가진 모습을 알아봐주고, 자기 자리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뭐든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 취미를 넘어 '내 삶의 방식'이 된다. 첫번째 나무는 결국 그의 삶의 방향의 이정표가 되었다. 2. 성공할수록 그는 숲으로 돌아갔다이재연 설립자의 삶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나무를 가꾼 시기다. 당시 그는 기업인으로서 바쁜 삶을 살았다. LG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치열한 경영의 현장에 있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만 나면 자신이 가꾸던 나무를 찾아갔다. 남들이 주말이면 골프장으로 향할 때, 그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직함과 책임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결정해야 했을 텐데, 그의 시간을 붙잡고 있던 것은 의외로 아주 느린 '나무'였다.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 물을 준다고 내일 갑자기 크게 자라지도 않고, 좋은 가지를 하나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의 세계가 빠른 판단과 성과를 요구한다면, 나무의 세계는 정반대의 시간을 요구한다. 기다리고, 관찰하고, 돌보고, 또 기다리는 것. 그는 어쩌면 두 개의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셈이다. 그리고 그 느린 시간이 있었기에,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균형을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3. ‘인생의 은행’에 예금한 것그가 송파원 땅을 가꾸며 품었던 생각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이 있다. “이곳을 인생의 은행으로 삼아야겠다.” 돈을 넣어두는 은행이 아니라, 나무를 심어두는 은행. 그리고 그 은행의 이자는 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나무가 커지고, 숲이 만들어지고, 누군가 그 아래에서 쉬게 될 때 비로소 돌아온다. 이재연 설립자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1966년에 심은 나무들이 숲으로 자라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그 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그의 직함도, 삶의 모습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그 자리에서 계속 자랐다. 오늘의 결과를 위해 어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꺼이 살아내는 것.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삶을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 돌볼 것을 하나쯤 삶에 갖는다는 것. 그리고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 심는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그가 말하는 ‘인생의 은행’이 아닐까. 4. 43년의 기다림 끝에 문을 열다2009년 5월 11일. 오랫동안 자신만의 정원으로 가꾸어온 공간이 '베어트리파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1966년 시작된 나무와의 시간, 43년 만에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된 순간이었다. 그가 수목원과 동물들을 사람들에게 공개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아름다운 수목원과 동물들을 여러 사람, 특히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한 사람의 취미에서 시작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돌보고 가꾸는 동안 그곳은 더 이상 개인의 정원으로 머물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늘어나고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돌봐온 것을 세상과 나누기로 했다. 소유하는 것에서 돌보는 것으로, 돌보는 것에서 나누는 것으로. 베어트리파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변화가 보인다. 5. 나무는 우리에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친다이재연 설립자가 평생 가꾸어온 분재들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온다. 분재는 작은 화분 안에서 수십 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다. 인위적으로 형태를 빚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무의 본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지닌 결을 읽고 따라가는 과정에 가깝다. 서두르면 나무는 죽고 만다.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진정한 분재가 된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마음대로 나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마다 가진 생김새와 가지의 방향, 자라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분재를 만드는 일은 나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읽고 그에 맞춰 기다리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이재연 설립자의 삶과도 닮아 있다. 무언가를 빨리 완성하려고 했다면, 베어트리파크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그루를 심고 기다리고, 또 다른 나무를 찾아 심고 기다리고, 계절을 보내고, 해를 보내고, 다시 그 나무를 돌보는 시간.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이 결국 숲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보고 그 사람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숲은 결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많은 날들이 필요하다. 6. 우리, 너무 빨리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재연 회장의 삶에서 흥미로운 점은 나무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치열한 기업 경영과 자연을 가꾸는 삶이 수십 년간 조화롭게 공존했다. 뇌과학에 따르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지고, 흙을 만지는 행위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안정시킨다. 현대에 들어 '숲치유'나 '가드닝 테라피'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재연 회장은 그 어떤 연구 결과보다 먼저 몸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주말이면 세종으로 내려가 나무 곁에 머무는 시간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완벽한 회복이었을 것이다. 가드닝은 그에게 취미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었다. 이재연 설립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멋진 수목원을 만드는 법’이 아니다. 요즘 우리는 무엇이든 빠르게 얻고 싶어 한다. 운동을 시작하면 빨리 몸이 달라지기를 바라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빨리 성과가 나기를 바라고, 습관을 만들면 며칠 안에 내가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게 자라지 않는다. 어쩌면 웰니스도 나무와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건강한 몸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좋은 마음의 습관도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돌보고, 때로는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그럼에도 계속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삶을 바꾸기도 한다. 나무를 가꾸듯 나를 가꾸는 일을 너무 보채지 말자. 7. 8월, 숲의 그늘 아래에서8월의 숲은 가장 짙은 초록을 보여준다. 봄처럼 연약하지도 않고, 가을처럼 쓸쓸하지도 않다. 오랜 시간 자란 나무들이 가장 풍성한 잎을 펼쳐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계절이다. 이재연 회장이 설립한 베어트리파크 안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 나무들은 누군가가 수십 년 전 심은 나무라는 것을. 그 사람이 이 나무가 이렇게 자란 모습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그리고 자신이 심은 나무 아래에서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무를 심는 사람은 자신이 심은 나무의 모든 시간을 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심는다. 어쩌면 그것이 나무를 심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인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돌본 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쉼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우리가 꼭 수목원을 만들 필요는 없다. 창가에 작은 화분 하나를 놓아도 좋고, 매일 걷는 길의 가로수를 한 번 더 바라봐도 좋다. 오래 키우고 싶은 습관 하나를 시작해도 좋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계속 돌볼 수 있는 것.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분명 우리 삶의 어딘가에서 작은 숲이 되어 있을 테니까. 60년 동안 나무에 예금한 사람. 이재연 설립자가 남긴 것은 결국 나무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평생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돌보고, 무엇을 다음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숲으로 남겼다. 그리고 8월의 짙은 초록 아래에서 우리는 그 이자를 잠시 함께 누린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심은 만큼 자라고, 가꾼 만큼 아름다워진다. 출처 | 베어트리파크 웰디가 전하고 싶은 말이재연 회장의 이야기가 인상적인 건 대기업 부회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그 바쁜 삶 한가운데서도 매주 주말이면 흙으로 돌아갔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무를 심는 것은 미래를 향한 믿음이다. 비록 내가 그 나무 아래서 직접 쉬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가 그 그늘에서 쉴 것이라는 다정하고도 사랑스러운 믿음. 그 오랜 믿음이 60년을 버티게 했고, 오늘날 수백만 명이 찾는 숲을 완성했다. 문득 쉼이 필요할 때 , 이재연 회장의 이야기가 스며들듯 떠오른다면, 가까운 숲이나 베어트리파크를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그저 스쳐 지나던 초록의 풍경이 조금은 다르게, 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묵은 세월과 정성이 쌓여 완성된 숲은, 지친 우리에게도 말없이 커다란 그늘을 내어줄 테니.
2026. 8. 10. 피플![[7월의 인물] 대한민국 최초 여성 법조인 이태영 변호사](https://cdn.daydera.com/thumb/1783468264610014250.jpg)
[7월의 인물] 대한민국 최초 여성 법조인 이태영 변호사
👩🏻💼 법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사람 이태영 변호사 출처 | sbs 제헌절이 있는 7월이다. 헌법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이 날, 우리가 떠올려야 할 여러 사람이 있다. 그 중 헌법에 적힌 남녀평등이 실제 삶에서도 작동해야 한다고 평생을 외쳤던 사람.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1914~1998) 변호사를 떠올려 본다. 1. 판사가 되지 못한 최초의 여성 합격자1952년, 이태영은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여성 최초의 합격이었다. 당연히 판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야당 인사였던 남편 정일형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거부했다. 문이 닫혔다. 그러자 그녀는 다른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여성들이 몰려왔다.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은 여성, 이혼했더니 아이를 빼앗긴 여성, 남편이 죽었는데 재산을 하나도 받지 못한 여성. 법이 여성 편이 아닌 시대였다. 그리고 이태영 외에는 아무도 그 여성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출처 |한국가정법률사무소 자료 2. 37년의 싸움그녀가 사무실에 앉아 상담을 들을수록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 자체를 바꿔야 한다. 1952년부터 시작된 가족법 개정 운동은 37년 동안 이어졌다. 호주제 폐지, 이혼 시 재산분할 청구권 인정, 동성동본 금혼령 폐지. 당시 법조계와 보수 유림은 맹공격했다. "법조계 초년생이 뭘 안다고 법을 고치려 하느냐." "인륜을 어지럽힌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1956년에는 여성법률상담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웠다. 돈이 부족하면 지인들에게 손을 벌렸다. "내 장례식 부조금 먼저 달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하면서까지 상담소를 유지했다. 1977년에는 민주화 운동 참여로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1980년 복권됐지만 그 사이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989년, 37년의 싸움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혼 여성의 재산분할 청구권이 법적으로 인정됐다. 1989년 가족법 개정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 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 노릇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법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그녀가 평생 증명하려 했던 단 하나의 명제였다. 3. 이태영 변호사에게 묻는다면웰니스적 삶이란 무엇인가 웰니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내 몸을 돌보고, 내 마음을 챙기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태영의 삶은 웰니스의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녀의 평생 신념은 이것이었다. "여권운동은 인권운동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 한 사람의 건강과 행복이 주변 사람의 존엄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 내가 잘 살기 위해 옆 사람도 잘 살아야 한다는 인식. 그것이 그녀를 37년 동안 움직인 힘이었다. 혼자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웰니스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상이 조금 더 공정해지도록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웰니스의 한 부분이다. 이태영은 그것을 평생으로 보여줬다. 4. 마지막으로호주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10년이 지난 2008년에야 완전히 폐지됐다. 처음 그것을 주장한 지 51년 만이었다. 살아서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다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 방향이 맞다면, 계속 나아가면 된다. 웰디가 전하고 싶은 말이태영 변호사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결코 빠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인 것 같아요. 37년이 걸렸죠.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욕을 먹기도 했고, 살아서 결과를 보지 못한 것도 많아요.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어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이 그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웰니스는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만이 아니에요. 세상과 나에게 옳고 바르다고 믿는 것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웰니스입니다. 제헌절이 있는 7월 헌법이 약속한 평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걸었던 이태영을 기억해보세요.
2026. 7. 7. 피플
'셀프힐러'의 창시자 니콜 르페라
스스로 치유하는 사람 — Dr. Nicole LePera심리학자가 치료실 문을 열고 인터넷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환호했고 치유됐다. Dr. Nicole LePera (@the.holistic.psychologist)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출처 | https://drwillcole.com 1. 상담실 안에서 의문을 품은 심리학자니콜 르페라는 코넬대학교와 뉴스쿨 사회연구소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필라델피아 정신분석학교에서 수학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임상심리 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런데 막상 치료실 문을 열고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불편함이 생겼다. 전통적인 임상심리학이 주로 증상에 이름을 붙이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의 연결, 트라우마, *후성유전학 같은 것들이 교육 과정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추가 정보 * 후성유전학 | DNA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환경이나 생활 습관에 의해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지면서 우리 몸의 발현 방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그녀는 직접 말했다. "임상심리는 진단 모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증상에 그저 이름을 붙이는 것이죠. 저는 환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본적으로 증상을 관리하는 것뿐이라고 훈련받았어요. 그들이 트라우마, 후성유전학, 의식적 인식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것들은 제가 지금 매일 가르치는 것들이에요. 왜냐하면 이것들이 엄청난 치유로 이어지거든요." 불만족은 환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향했다. 르페라는 스스로 평생 불안을 겪어온 사람이었다. 20대에 첫 공황 발작을 경험했고, 심장마비라고 착각해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정작 자신의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다. 2. 자신의 치유에서 시작된 것임상심리학자로서 전통적인 심리치료의 한계에 좌절을 느끼던 그녀는 환자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원했고, 정신적, 신체적, 영적 웰니스를 통합하는 철학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 결과를 경험한 뒤 배운 것을 나누기 시작했고, 곧 '홀리스틱 사이콜로지스트(The Holistic Psychologist)'가 탄생했다. 💡추가 정보 홀리스틱(Holistic) | 몸과 마음, 정신을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보고, 그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관점을 뜻합니다. 홀리스틱 사이콜로지스트(Holistic Psychologist) | 마음의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 환경, 생활 습관 등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치유를 돕는 심리학자를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수백 명이 보는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다. 자신의 치유 여정을 나누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올리는 공간. 그런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계정을 만들자마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막혀 있다는 경험에 공감하는지 드러났어요." 3. 그녀가 말하는 것그녀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다. 당신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작업은 임상심리학과 홀리스틱 원칙을 혼합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치유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녀가 강조하는 도구들은 경계 설정, 어린 시절 자아 돌보기(inner child work), 의식적인 일상 습관, 저널링, 신체-마음 연결 인식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엄청난 속도로 퍼졌다. 그녀는 전 세계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를 손에 쥐기 위해 함께하는 #SelfHealers 무브먼트를 창시했다. 팟캐스트 다운로드는 500만 회를 넘었고, 저서 《How to Do the Work》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상담실에서 시작된 불만족이, 결국 수천만 명이 공감하는 메시지가 됐다. 4.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끌렸을까이해하기 쉽다. 의료 비용은 사상 최고이고, 보험의 치료 범위는 좁아지고, 정신 건강은 여전히 의료 체계에서 부차적으로 다뤄진다. 접근성의 문제였다. 심리치료는 비싸고, 예약은 어렵고, 막상 가봐도 자신에게 맞는 치료사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반면 그녀의 콘텐츠는 무료이고, 언제든 볼 수 있고, 복잡한 심리 개념을 일상 언어로 풀어준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치유해야 했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들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콘텐츠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라고 말하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5. 비판도 존재한다균형 있게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니콜 르페라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심리학계 안팎의 비판도 받았다. 핵심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개인 책임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체계적 억압, 빈곤, 차별 같은 구조적 요인을 지운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과 자기 치유로 해결될 수 있다는 프레임이,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다는 지적이다. 둘째, 일부 콘텐츠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전문적 치료 대신 자기 치유 콘텐츠에만 의존하게 될 위험성도 지적됐다. 르페라 본인도 이에 대해 말한 적 있다. "내 작업이 '옳은 것'이 아니고, 나는 치유에 관한 '권위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6. 그럼에도 그녀가 남긴 것비판이 있더라도, 그녀가 한 일의 의미는 분명하다. 심리학을 치료실 밖으로 꺼냈다. 트라우마, 경계, 내면 아이, 의식적 선택 같은 개념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수천만 명에게 전달했다. '치유'라는 것이 전문가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과 습관 안에도 있다는 것.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 그 메시지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닿은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치유는 상담실이나 병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을 더 잘 이해하려는 시도 안에서도 일어난다. 웰디가 전하고 싶은 말니콜 르페라의 이야기가 인상적인 건 900만 팔로워 때문이 아니에요. 물론 "헉" 하는 숫자죠. 그러나 자신의 불안을 직면하고, 배운 것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모든 콘텐츠를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나는 내 치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태도만큼은, 어디서 시작해도 좋은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6. 7. 2. 피플
요즘 뜨는 인물— 한성숙과 송미령
👩🏻 화려한 타이틀보다, 오래 쌓아온 것들이 말해주는 그들의 이야기 출처 | 뉴스1(재가공)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쌓아온 것들이 어느 순간 세상 앞에 드러날 뿐이다. 2026년, 두 여성의 이름이 나란히 주목받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이후 20년 만에 역대 두 번째 여성 국무총리가 된 한성숙과, 정권이 교체될 때 전 정부 장관이 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같은 해, 1967년생이다. 그리고 둘 다 타이틀이 아니라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성숙 — 평범한 직장인에서 총리까지한성숙 총리는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 전문지 민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엠파스 검색사업본부장을 거쳐 2007년 네이버에 합류해 서비스본부장, 총괄이사 등을 역임하고 2017년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네이버 최초의 여성 CEO였다. 기자에서 시작해 CEO까지. 직선이 아니었다. 수십 년에 걸쳐 디지털 산업의 변화를 몸으로 겪으며 한 단계씩 올라온 궤적이다. 대표 재임 기간에는 네이버의 모바일 전환과 글로벌 사업 확장을 주도했고, 스마트스토어 성장 기반을 마련하며 웹툰·웹소설 사업의 해외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민간 CEO에서 장관으로, 장관에서 총리로. 대통령실은 그를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발해 국내 대표 디지털 기업 수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리더"라고 표현했다. 웰니스적으로 이 커리어에서 읽히는 것은 단 하나다. 자기 속도를 지킨 사람. 빠르게 치고 올라가려 하지 않고, 각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사람의 흔적이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킨 사람은, 결국 그 자리가 그 사람을 증명한다. 송미령 — 정권이 바뀌어도 남은 사람송미령 장관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이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199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입사해 지역개발팀장, 농촌정책연구부장, 부원장을 거쳐 농업관측센터장을 맡았다. 20년 넘게 같은 분야에서 쌓았다. 농업, 농촌, 지역개발. 화려하지 않은 영역이다. 트렌디하지도 않다. 그런데 그 시간이 결국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에 증명됐다. 정권 교체 후 이재명 정부가 신임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는 대신 송미령 장관을 유임한 것은,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실력으로 판단하겠다는 실용주의 기조에 기반한 인선이었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전문성을 인정받아 자리를 이어간 전례 없는 사례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했다. 농업·농촌 정책 분야에서 축적한 전문성이 그 누구도 대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송 장관 본인은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오늘 아침에도 양파 가격은 얼마인지, 계란 값은 안정적인지 수급 걱정부터 했다"고 말했다. 타이틀보다 현장이 먼저인 사람의 말투다. 20년 넘게 같은 땅에 뿌리 내린 사람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쉽게 뽑히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말해주는 것한성숙과 송미령. 걸어온 길은 완전히 다르다. 한 사람은 IT 업계의 빠른 변화 속에서, 한 사람은 농업이라는 느린 세계에서. 한 사람은 화려한 플랫폼 기업의 수장으로, 한 사람은 연구소 한 켠에서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런데 둘 다 같은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름길을 찾지 않았다. 자기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했다. 그리고 타이틀이 필요할 때,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웰니스가 결국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이야기라면, 이 두 사람의 커리어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빠르게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깊게 파면 된다. 자기 자리를 아는 사람은, 결국 세상이 그 자리를 찾아온다. 웰디가 전하고 싶은 말한성숙과 송미령의 이야기가 인상적인 건 두 사람이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 이어서가 아니라 오래, 꾸준히, 자기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결국 어디에 닿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느리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방향이 맞다면, 그 쌓임은 언젠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닿을거라는 것을 믿고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멋진 하루 보내세요 🌿
2026. 6. 30. 피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