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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사람

이태영 변호사

출처 | sbs

제헌절이 있는 7월이다. 헌법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이 날, 우리가 떠올려야 할 여러 사람이 있다. 그 중 헌법에 적힌 남녀평등이 실제 삶에서도 작동해야 한다고 평생을 외쳤던 사람.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1914~1998) 변호사를 떠올려 본다.

1. 판사가 되지 못한 최초의 여성 합격자

1952년, 이태영은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여성 최초의 합격이었다. 당연히 판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야당 인사였던 남편 정일형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거부했다.

문이 닫혔다. 그러자 그녀는 다른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여성들이 몰려왔다.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은 여성, 이혼했더니 아이를 빼앗긴 여성, 남편이 죽었는데 재산을 하나도 받지 못한 여성. 법이 여성 편이 아닌 시대였다. 그리고 이태영 외에는 아무도 그 여성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출처 |한국가정법률사무소 자료

2. 37년의 싸움

그녀가 사무실에 앉아 상담을 들을수록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 자체를 바꿔야 한다. 1952년부터 시작된 가족법 개정 운동은 37년 동안 이어졌다. 호주제 폐지, 이혼 시 재산분할 청구권 인정, 동성동본 금혼령 폐지. 당시 법조계와 보수 유림은 맹공격했다. "법조계 초년생이 뭘 안다고 법을 고치려 하느냐." "인륜을 어지럽힌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1956년에는 여성법률상담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웠다. 돈이 부족하면 지인들에게 손을 벌렸다. "내 장례식 부조금 먼저 달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하면서까지 상담소를 유지했다.

1977년에는 민주화 운동 참여로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1980년 복권됐지만 그 사이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989년, 37년의 싸움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혼 여성의 재산분할 청구권이 법적으로 인정됐다.

1989년 가족법 개정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 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 노릇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법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그녀가 평생 증명하려 했던

단 하나의 명제였다.

3. 이태영 변호사에게 묻는다면

웰니스적 삶이란 무엇인가

웰니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내 몸을 돌보고, 내 마음을 챙기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태영의 삶은 웰니스의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녀의 평생 신념은 이것이었다. "여권운동은 인권운동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 한 사람의 건강과 행복이 주변 사람의 존엄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 내가 잘 살기 위해 옆 사람도 잘 살아야 한다는 인식. 그것이 그녀를 37년 동안 움직인 힘이었다.

혼자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웰니스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상이 조금 더 공정해지도록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웰니스의 한 부분이다. 이태영은 그것을 평생으로 보여줬다.

4. 마지막으로

호주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10년이 지난 2008년에야 완전히 폐지됐다. 처음 그것을 주장한 지 51년 만이었다. 살아서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다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

방향이 맞다면, 계속 나아가면 된다.

웰디가 전하고 싶은 말

이태영 변호사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결코 빠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인 것 같아요. 37년이 걸렸죠.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욕을 먹기도 했고, 살아서 결과를 보지 못한 것도 많아요.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어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이 그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웰니스는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만이 아니에요. 세상과 나에게 옳고 바르다고 믿는 것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웰니스입니다. 제헌절이 있는 7월 헌법이 약속한 평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걸었던 이태영을 기억해보세요.